감격의 신입 입문교육 날짜를 받아들고 나니 천국이 따로 없다.
1월 한달여동안 매일매일이 빈둥빈둥 또는 여기저기 축하주의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약간 멘탈이 흔들린 사건은,
신체검사를 받으러 간 자리에서 내가 전자에 합격한 것을 확인한 날이다.
난 분명히 SDS를 지원했는데 2지망인 전자에 합격한 것이다.
SDS를 가면 처음 부터 다같이 교육을 시켜준다는 얘기에 학교다닐때의 게으름을 극복할수 있을거라고 철썩같이 믿었는데
알고보니 전자였다니....
이름마저도 왠지 전자공학과가 가야한다는 느낌의 그곳에서 과연 내가 잘할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같이 합격한 과 친구들과 같이 잘 해보자고 (전자가 그리 큰지 몰랐다) 의지를 하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한달여를 앞둔 어느날
갑자기 나도 직장여성이 되면 눈화장도 하고 좀 세련되어져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입사날짜를 한달여 앞두고 안과를 찾았다.
지금 생각하면 겁도 없이 그 라식 초창기 시절에
당시의 아주 큰 돈을 들여 예약을 하게 된다. (300만원이었던것으로 기억한다)
수술을 하는 의사선생님의 안경이 무지 두꺼운게 맘에 걸리긴했으나
최첨단 의료 기기의 힘을 빌어 10여년간의 안경순이를 벗어날수 있는 기대를 안고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을 기다리며 눈에 마취안약을 넣고 대기하는 동안
안경잡이의 서러움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더이상 목욕탕에서 엄마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장마시즌에 실내 들어갈 때 눈앞의 습기에 없어보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안경을 끼고 세수를 하다가 눈사이에 두라인의 상처가 생기는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두가지가 아닌 장점을 생각하며 당장 눈앞의 잠시의 고통은 참을수 있는것이다.
수술이 시작되고 뭔가 눈알의 껍데기를 얇게 포를 뜨는 느낌과 함께 뿌연 시야,
움직이면 눈에 탈이 나지 않을까 싶어 꼼짝없이 움직이고 있던 삼십여분간의 수술
마취를 해서인지 그렇게 아프진 않았지만 큰 수술을 끝낸 느낌으로 더듬더듬 아부지 손에 의지해서 병원을 나왔다.
그때의 놀라운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다.
수술후 눈을 보호하기 위해 부착한 구멍송송 안대 사이로
버스 정류장의 버스번호가 보이는 것이다.
진정 의학 기술의 승리였다.
수술을 끝내고 눈에 보호대를 착용하며 며칠을 빈둥빈둥 보내니 코앞으로 다가온 입사 날짜
백화점을 돌며 정장도 한벌 사고, 필요한 준비물들을 하나 둘씩 챙기고
친구들과 졸업 기념 경주 MT도 다녀오고나니
드디어 2월 15일이 되었다.
부산역에서 가족들과 우리 이쁜이 4인방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눈물 콧물 흘리며 기차에 올랐다.
훗날 내가 구미로 배치 받을지는 꿈에도 모르고 상경하면서 헤어진다는 생각에 기차안에서도 얼마나 슬퍼했던지...
드디어 98년 2월 16일
연수원은 용인 창조관, 38기 15차
난생처음 오롯이 혼자서 뚝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느낌은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훨씬 컸다.
그날의 일기는 나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자 이제 인생 제 2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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