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ㅋ 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메타자만 겨우 뗀 걸음마 전산학도(?)의 첫 경험은 C언어였다.

지금 생각하면 젊은 교수님이셨던 그 분은
내가 집중하지 못해서 그랬지 아주 스마트하신 것으로 회고된다.

바이블과 같았던 아주 모범적인 C언어 책이지만
영어도 서툴렀던 나에겐 그 영어로 또다른 "C언어"를 익혀야하는 사실 자체가
명랑 여고 시절을 보낸 그 당시 덜 여문 사고체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여긴 어디...나는 누구...)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적응했어야 했는데,
그 스마트하신 교수님의 본인 판단의 훌륭한 제도를 도입하시게 되면서
나의 전산학도로서의 시작은 꼬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건 교수님의 탓이 아니고, 지금도 탓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남녀학생 비율이 차이가 많이 났던 공대와 달리
전산학과는 남녀 비율이 거의 반반 이었다. (여학생이 조금 많은)

이 비율을 보고 생각을 하신 것인지, 그냥 원래 매년 행하던 제도인지 모르겠으나
C수업의 한 학기 과제와 텀프로젝트를 1:1 로 남녀 짝을 지어서 하는 것으로 제도화 하신 것이었다.

랜덤이었는지 뽑기였는지, 임시로 알아서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으나
운명의 내짝은 (별명이) 임씨였다.

프로그래밍을 곧잘하던 남학생 짝지들이 있는 나를 포함한 여학생들은
알아서 잘해주는 짝지들에 금방 적응해갔고
숙제를 내야하는 시기가 되면 실컷 동아리를 돌아다니다
짝지가 있는 컴터방에 음료수를 들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3,4학년이 될때까지 "나는 전산과는 맞지 않아" 타령을 하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지금도 과제 기간이 되면 나를 찾던 임씨에게 미안한 맘도 있고 - 그래도 과외비로 밥도 자주 사주고 친하게 지냈던 ^^ -
나 역시 그 제도만 아니었다면 이라는 희생양의 마인드도 있다.

지금도 누군가 이쪽 계통을 전공을 정한 사람이 있다면
첫 시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경험어린 충고를 해주고 싶다.
SW 경험이 많지 않아 보이는 신입이 들어왔을떄도
초기에 아주 다양하고 열심히 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나름의 철학 역시 이 경험에서 나온 것일수도 있다.

그렇게 3학년쯤 되었을때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라고 막연한 생각이 들면긴했지만
딱히 토익 공부말고는 다른 용기나 결단력이 있지도 않아
처량한 전공 점수를 챙기며 한숨만 쉬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의 직업을 갖게된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대학을 다시 간다면 하고 싶은 것들이 일반적으로는
배낭여행을 간다거나 연애를 찐하게 한다거나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한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나는 전공 공부를 다시 한번 처음부터 아주 성실하게,
짝 없이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과제와 프로젝트를 수행해보고 싶은 강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은
그때의 불성실함에 대한 나만의 사정이 있기도 하다.

어쩌면 나랑 정말 안 맞는일이라고 규정지었던 것들이 알고 보면 의지의 문제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입사하고 일을 많이 한 후에 깨닫게 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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